[FIFA 단독] 황인범이 다섯 번째 행선지 네덜란드에서 누리고 있는 것들 (2025)

[FIFA 단독] 황인범이 다섯 번째 행선지 네덜란드에서 누리고 있는 것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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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단독] 황인범이 다섯 번째 행선지 네덜란드에서 누리고 있는 것들

FIFA 2025. 1. 22. 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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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명문이자 미드필더 황인범의 소속팀 페예노르트가 23일(이하 한국시각)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바이에른 뮌헨과 격돌한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이달 초 황인범과 화상으로 연결해 그가 해외 진출 후 다섯 번째로 경험하는 나라 네덜란드, 두 시즌째 출전 중인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쌓은 경험, 두 번째 FIFA 월드컵에 대한 목표, 그리고 자신이 정의하는‘빅클럽의 의미’를 얘기했다.

손흥민, 김문환, 김승규, 김영권, 황인범, 김진수, 정우영. 이 일곱 명은 카타르가 개최한 지난 2022 FIFA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이 조별 리그, 16강을 포함해 소화한 총 네 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한 선수들이다. 이후 대표팀은 파울루 벤투 감독이 떠난 후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1년간 풍파를 겪은 끝에 경질됐고, 홍명보 감독이 부임하며 선수 구성에 적지 않은 변화가 발생했다. 앞서 언급한 선수 일곱 명 중 여전히 대표팀의 주축으로 활약 중인 이는 주장 손흥민을 제외하면 사실상 황인범(28, 페예노르트)이 유일하다. 실제로 카타르 월드컵 본선 네 경기에 이어 2026 FIFA 월드컵 아시아(AFC) 3차 예선에서도 한국이 치른 여섯 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한 선수도 황인범뿐이다.

벤투 감독 체제에서 카타르 월드컵에 나선 황인범에게 2018~2022년이 대표팀에서 주전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도전을 거듭한 시기였다면, 현재 자신의 두 번째 월드컵 무대를 꿈꾸는 그는 ‘도전을 받는 위치’를 선점한 상태다. 실제로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황인범의 앞에서는 손흥민과 이재성, 옆이나 뒤에서는 정우영, 김영권, 김진수와 같은 경험이 풍부한 형들이 자리를 지켜줬다면, 이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모두가 예상한 대로 이강인의 존재가 커졌고, 황인범의 옆과 뒤에는 박용우, 조유민, 설영우 등 그보다 A대표팀 경험이 뒤처지는 선수들이 다수 포진했다. 황인범 또한 이제는 대표팀뿐만이 아니라 소속팀에서도 네 시즌 연속 유럽대항전을 경험 중인 베테랑으로 성장했다.

황인범은 겨울 휴식기를 맞아 국내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소속팀 페예노르트로 복귀한 지난 1월 8일 FIFA와 모처럼 화상으로 연결해 지난 1년여 동안 한 곂이 더 쌓인 그만의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현재 종아리 부상에서 회복 중인 황인범은 페예노르트가 시즌 후반기를 시작한 현재 몸상태를 되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01. 네덜란드가 11년 만에 만난 한국 국가대표, 황인범

올 시즌 페예노르트로 이적한 황인범은 2019년 대전 시티즌을 떠나 밴쿠버 화이트캡스로 이적하며 해외 진출을 선언한 뒤, 현재 네덜란드까지 5개국(한국 제외)을 경험했다. 황인범이 올 시즌부터 몸담은 네덜란드 에레디비지는 과거 그가 활약한 북미 MLS,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그리스 수페르 리그 엘라다, 세르비아 수페르리가와 비교하면 국내 팬들에게 더 익숙한 리그다. 지난 80년대 허정무를 시작으로 90년대 노정윤, 2000년대 박지성, 이영표, 송종국 등, 2010년대 석현준이 차례로 네덜란드 무대에서 활약했다. 단, 황인범은 2013년 석현준이 흐로닝언을 떠난 후 11년 만에, 그리고 2020년대 들어 에레디비지에 입성한 첫 번째 한국 선수다. 그동안 네덜란드 축구는 변했을까?

“일단 네덜란드 리그 자체가 경기하기에 굉장히 재밌는 리그인 거 같아요. 순위가 좀 낮은 팀들은 내려설 때도 있긴 한데, 어쨌든 이 팀들이 공을 가지고 있을 때는 예를 들어 상대가 전방 압박을 한다면 전체적으로 골키퍼, 수비형 미드필더, 8번, 10번 미드필더 선수들을 통해서 압박을 풀어내는 축구를 공통적으로 많이 하더라고요. 네덜란드의 어린 친구들이 축구를 배울 때 이렇게 배우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 한국 어린 친구들이 이런 것들을 배우는지는 모르겠는데, 유럽에서 굉장히 많이 하는 플레이잖아요. 3자 패스를 통해서 풀어나가는 걸 여기는 모든 팀들이 해서 선수들이 축구를 되게 잘 배웠다는 생각이 막연하게 들더라고요.”

사실 캐나다, 러시아, 그리스, 세르비아, 그리고 네덜란드는 아마 한 번도 황인범이 이적을 할 때마다 첫 번째로 선호한 행선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해외 생활을 시작한 후 지난 5~6년에 팀을 옮길 때마다 매번 이적을 결심한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황인범은 유럽 진출이 무산되며 MLS행이 결정된 2019년에는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해외 무대를 경험하게 됐다는 데 의미를 뒀다. 이후 그는 2020년 UEFA 챔피언스 리그 출전이 보장되는 크로아티아 명문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이적을 거절하며 루빈 카잔을 택했을 때는 여전히 20대 초반의 성장기인 점을 고려해 굵고 짧게 끝날 수 있는 유럽대항전 출전 기회보다는 9~10개월 꾸준히 이어지는 자국 리그의 경쟁력이 더 탄탄한 러시아에서 자신이 높은 경기 강도 속에서 거친 몸싸움을 견디는 능력을 기르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02. UCL 2년 차 황인범, 유럽 최강을 만나 이기는 방법을 알아가다

이를 기점으로 황인범은 루빈 카잔에서 2021/22 컨퍼런스 리그, 올림피아코스에서 2022/23 유로파 리그, 즈베즈다에서 2023/24 챔피언스 리그를 차례로 경험했다. 매년 단계별로 유럽축구연맹(UEFA)의 클럽대항전을 모두 거친 황인범은 이제 페예노르트에서는 챔피언스 리그를 ‘경험’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유럽 축구의 최고 난이도를 자랑하는 무대에서 ‘이기는 방법을 알게 됐다’는 데 큰 가치를 부여했다.

“너무 감사하게도 두 시즌 연속 챔피언스 리그를 경험하고 있고, 선수로서 진짜 행복한 거죠. 저번 시즌이 저한테는 챔피언스 리그에서 첫 시즌이었는데, 즈베즈다에서 조별 리그 1무 5패를 했거든요. 그래서 ‘아, 진짜 확실히 챔피언스 리그는 쉽지 않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요. 그런데 이번 시즌에는 우리 팀이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너무 잘해주고 있어요. 지금 3승 1무 2패. 챔피언스 리그에서 이기는 기분을 느끼니까… 이게 정말 남달라요. 저번 시즌에도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챔피언스 리그에서 내가 가진 장점을 보여줄 수 있겠다. 벽 같은 무대는 아니구나’라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이번 시즌에는 팀이 이기니까 이 무대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더 얻었어요.”

황인범이 챔피언스 리그에서 올 시즌 새롭게 체험 중인 건 성적뿐만이 아니다. 그가 맡은 역할이 차지하는 팀 내 비중이 큰 건 지난 시즌과 비교해 다를 게 없이 크다. 그러나 황인범이 중원의 핵 역할을 맡은 팀이 챔피언스 리그에서 유럽 최고의 팀들을 상대로 발휘하는 경쟁력의 밀도가 지난 시즌 즈베즈다와 비교해 올 시즌 페예노르트는 한 단계 더 높다. 챔피언스 리그 경기당 평균 기록만 살펴봐도 올 시즌 페예노르트의 득점은 2.3골, 볼 점유율 46.7%. 이는 지난 시즌 챔피언스 리그에서 즈베즈다의 득점 1.1골, 볼 점유율 39.1%와 단순한 수치로만 비교해 봐도 경쟁력의 격차가 느껴질 만한 차이를 보이는 기록이다. 게다가 지난 시즌 즈베즈다는 점유율은 39.1%에 그쳤을 정도로 볼을 주도하지는 못했는데, 역습이 슈팅까지 이어진 비율마저도 단 39.1%로 유럽 무대에서는 빈도가 낮았던 공격조차 날카로움이 떨어졌다.

반면 올 시즌 페예노르트는 평균 점유율이 46.7%로 상대와 대등한 볼 소유권 싸움을 펼치면서도 역습을 슈팅으로 연결한 비율도 51.5%로 지공과 속공 상황에서 골고루 상대 문전을 공략 중이다. 황인범이 페예노르트와 올 시즌 챔피언스 리그에서 상대한 팀들도 레버쿠젠, 지로나, 벤피카, 맨체스터 시티 등으로 즈베즈다에서 맨체스터 시티, 영보이스, RB 라이프치히를 만난 지난 시즌과 굳이 난이도를 따진다고 해도 전혀 다를 게 없다. 황인범의 페예노르트는 23일 새벽 5시 챔피언스 리그 홈경기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다시 한번 유럽 최정상급 팀과 격돌할 기회를 잡는다.

03. 차원이 다른 네덜란드의 축구 철학과 운동장 환경

황인범은 주로 4-3-3 포메이션을 가동하는 페예노르트에서 지난해부터 네덜란드 대표팀에 발탁된 퀸턴 팀버르(23세), 현재 네덜란드 연령별 국가대표로 활약 중인 안토니 밀람보(19세)와 효과적인 조합을 이루고 있다. 페예노르트가 황인범을 영입하는 데 구단 역사상 25세 이상 선수를 위해 투자한 최고 이적료 기록을 세웠다는 점이 그에게 어떤 기대를 걸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어느덧 6년 전이 된 MLS 시절 “축구를 재밌게 하고 싶다”며 더 경쟁력 있는 축구에 대한 갈망을 나타내곤 하던 황인범은 계속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지만, “이제는 축구가 정말 재밌다”며 이를 더는 스트레스가 아닌 즐거움으로 자극 중이었다.

“네덜란드 리그는 경기를 하다 보면 템포도 굉장히 빠르고, 내려서는 팀들도 역습할 때는 굉장히 공격 숫자를 많이 두고 나가요. 그래서 경기하기가 굉장히 재밌고요. 리그 자체가 굉장히 재밌고, 페예노르트는 그중에서도 좋은 팀이다 보니까 경기를 하는 게 재밌어요. 정말 매력적인 리그라고 생각해요. 첫 번째로 우선 환경이 너무 잘 돼 있어요. 일단 경기장 시설은 열악한 팀들도 있지만, 운동장 잔디는 모든 팀들이 정말 최상급 상태로 하다 보니까 경기 퀄리티가… 예를 들어 객관적인 전력이 떨어지는 팀이라도 운동장 환경 덕분에 한 단계 위 레벨의 퍼포먼스를 보여줄 기회가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진짜 처음에 네덜란드에 왔을 때 들었던 생각이 ‘K리그가 이런 잔디에서 한다면, 정말 레벨이 몇 단계는 올라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제가 한국 선수라서 아쉬운 점이 있더라고요. 한국 선수들이 어떤 잔디에서 축구를 하는지를 알다 보니까… 이런 점들은 본받아야 된다라고 해야 될까요? 물론 운동장을 관리하는 방식이 다른 점도 있고, 확실히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존재하겠죠. 여기 네덜란드에 있는 선수들은 운동장 상태나 이런 거에 대한 감사함을 모를 거예요. 그래서 제가 네덜란드 언론이랑 인터뷰할 때 ‘이런 환경에서 뛰는 건 선수로서 축복받은 거다’라는 얘기를 했었어요(웃음).”

04. 흔들린 대표팀 분위기? “서로 이해하고 적응해 이제 괜찮아”

유럽 축구의 재미를 알아가는 중인 황인범이지만, 그의 커리어를 논할 때 ‘대표팀’은 빼놓을 수 없는 주제다. 황인범은 2018년 벤투 감독 체제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른 후 약 7년째 대표팀 주전 미드필더 자리를 꾸준히 지켜왔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 대표팀이 벤투 감독의 리더십 덕분에 그나마 안정적으로 운영된 2018~2022년 사이클에 이어 지금까지 꾸준히 주전 자리를 지킨 선수는 공수의 핵 손흥민, 김민재를 제외하면 중원의 키를 쥔 황인범이 유일하다. 한국 대표팀을 둘러싼 분위기는 선수단과는 무관한 이유로 여전히 시끌벅적하다. 지난 7년간 한국 축구의 희로애락을 모두 경험한 황인범에게 대표팀 분위기가 어떠냐고 물어봤다.

“팀 분위기는 괜찮아요. 정말 제가 인터뷰라서 이렇게 얘기하는 게 아니라, 초반에는 사실 저희가 흔들렸잖아요. 뭐… 그러니까 선수들의 문제가 아니라 이외 여러 이유로 많이 흔들렸던 게 사실이라 솔직히 처음 소집됐을 때 좀 어색한 분위기도 있었고요. 그런데 제가 느끼기에는 9월 처음에만 그랬고, 10~11월로 가면서 서로 더 이해하고, 적응하면서 분위기가 굉장히 좋게 흘러왔고요.”

“앞으로 3월, 6월 총 네 경기가 남았는데, 3월 저희 목표는 2승을 함으로써 월드컵 진출을 확정할 수 있으면 베스트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2승을 해서 6월에는 조금은 마음 편하게 경기에 임할 수 있게 끌고 가는 거죠. 지난 월드컵 최종예선도 지나고 나서 지금 보면 쉽게 진출한 것 같았는데, 사실 그 속에서는 매 경기가 정말 전쟁이었고, 힘들었거든요. 이번에도 역시나 마찬가지인 거 같아요. 쉬운 경기 하나 없고, 늘 매 경기 모든 걸 쏟아내야지만 결과를 가지고 올 수 있어요. 선수로서 이런 경험을 두 번째로 할 수 있다는 것도 굉장히 감사하죠.”

05. 세 골 차 따라잡은 맨시티 원정? ‘인생 경기’는 여전히 포르투갈전

황인범 또한 어느덧 유럽 무대에서 5년째 활약하며 기억에 남을 만한 승부를 꽤 많이 경험해 봤지만, 여전히 그의 ‘넘버원 매치’는 한국 축구가 12년 만에 월드컵 16강이라는 약속의 땅을 밟게 해준 포르투갈전 2-1 역전승이다. 공교롭게도 다음 월드컵은 북미 3개국 공동개최로 열린다. 캐나다, 미국은 2019년 황인범이 해외 진출을 선언하며 처음으로 경험한 두 국가다.

“솔직히 월드컵이라는 무대에 대한 생각은 변할 수가 없는 거 같아요. 한번 경험을 한 것도 너무 영광스럽고, 진짜 꿈을 이룬 거잖아요. 그렇게 어렸을 때부터 꿔왔던 꿈을 이뤘지만, 월드컵 경험을 한 번으로 끝내고 싶지는 않아요. 그 무대가 주는 압박감, 긴장감, 또 그 속에서 결과를 뭔가를 만들어냈을 때 성취감과 행복을 느껴보니까 ‘아, 이거는 한 번 더 경험을 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요. 모든 선수들이 마찬가지였을 것 같아요. 그때 같이 했던 선수들은 아마 더 강한 동기부여를 얻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 정도로 정말 월드컵 무대가 주는 무게감은 남달라요. 아까 얼마 전 3-3으로 비긴 맨시티 원정이 제 선수 생활 통틀어서 가장 극적인 경기 중 하나일 거라는 말씀을 하셨잖아요. 물론 손가락 안에는 드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의 1번으로는 절대 변하지가 않을 경기가 카타르 월드컵 포르투갈전이거든요. 아마 제가 뛰어본 경기 중 가장 극적이고, 가장 행복한 결과가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고요. 그 결과로 인해서 대부분의 국민들이 행복할 수 있었다라는 거에 대한 자부심도 있어요 선수로서. 이제 다음 월드컵까지 1년 반 정도 남았는데, 그 무대에 꼭 다시 한번 서고 싶고요. 카타르에서 가지고 왔었던 결과보다 더 좋은 결과를 가지고 올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최근 몇 년 사이에 해외파가 비약적으로 늘어난 가운데, 이제 유럽에서 활약 중인 선수는 대표팀의 주축을 맡은 스타 선수들과 촉망받는 기대주로 나뉘고 있다. 현재 이들을 현장에서 수시로 매주 각국을 오가며 직접 점검 중인 홍명보 사단의 구성원은 포르투갈 출신 주앙 아로소 코치다. 과거 벤투 감독의 수석코치로도 활약한 아로소 코치 외에 홍명보 감독, 이외 국내 코칭스태프 구성원도 활발하게 유럽파 선수들을 관리 중이다. 이 중 현역 시절 러시아 명문 제니트에서 맹활약했던 김동진 코치는 과거 황인범이 루빈 카잔으로 이적할 때 그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며 예전부터 서로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가진 선후배 관계였다.

“주앙 코치님께서 저번에 저희 벤피카랑 원정 경기 했을 때도 오셔서 경기 보시고 끝나고 이런저런 전술적인 얘기, 팀 얘기도 했고요. 사실 대표팀에 있었을 때, 제가 외국에 있는 동안 관리를 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홍명보 감독님이나 코칭스태프 선생님들이 문자, 전화로 항상 부상 여부나 몸상태가 어떤지, 그리고 득점을 했을 때는 축하 문자도 보내주시고요. 항상 체크하고 계신다라는 걸 선수들도 다 알고 있다 보니까 감사하게 생각하죠. 어렸을 때를 생각해보면 지금 이런 상황은 꿈도 못 꿨거든요. 그 당시에는 감히 대표팀 감독님, 코치님들이 제 몸상태를 체크해주시는 걸 상상도 못 했죠. 지금은 그런 상황에 있다는 데 감사하고 있어요.”

06. 가족이 먼저! 득녀 후 더 커진 가족의 중요성

이 장문의 기사 내용 절반 이상을 황인범이 지난 1년간 축구를 하며 달라진 점에 초점을 맞췄지만, 사실 그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운동장 밖에서 벌어졌(?)다. 약 3년 전 결혼에 골인한 황인범은 지난해 득녀를 하며 흔히들 말하는 딸바보 대열에 합류했다. 캐나다 시절부터 열심히 영어를 공부한 황인범에게 지난 1년 사이에 식구가 늘어나며 영어권에 매우 근접한 서유럽 국가 네덜란드행은 축구 외적으로도 필요한 변화였다. 황인범은 지난 5~6년간 해외 생활을 시작하며 축구장 밖에서는 결혼을 하고, 가장이 되고, 아버지가 되는 과정을 거치며 삶에 필요한 우선순위에 대한 생각도 많이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어… 솔직히 저뿐만이 아니라 한국 선수들은 아마 어렸을 때부터 무조건 축구가 먼저였을 거예요. 정말 저는 그렇게 배웠어요. 진짜 어떤 일이 있어도 축구가 먼저였고, 아프더라도 축구를 했어야 됐고, 운동을 했야 됐고. 물론 지금은 조금 달라졌겠죠 아무래도. 물론 저희는 그런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지금 이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라는 생각도 해요. 그렇지만 제가 이제 많은 나라들을 다니면서 경험해본 결과 이 사람들한테는 정말 가족이 먼저잖아요. 정말 말로만 가족이 먼저가 아니라 이 사람들한테는 정말 가족이 먼저다 보니까 저 역시도 이제 결혼도 했고, 또 작년에 이제 득녀를 하면서 이제 가족에 대한 중요성이 정말 커졌고요.”

“그런데 저는 너무 어렸을 때부터 다른 환경 속에서 자라서 이게 좋은 건지 사실 모르겠는 거예요(웃음). 어느 순간 딱 든 생각이… ‘내가 이렇게까지 축구보다 가족이 먼저여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제 저한테는 가족이 첫 번째가 됐어요. 제가 딸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와이프와 저 둘만 여러 나라 돌아다니면서 여행하는 걸 좋아해서 이적을 자주 해도 전혀 문제가 없었어요. 그런데 앞으로는 우리 딸을 생각해야 되잖아요. 예를 들어 이적할 상황이 왔을 때 예전에 그랬었던 것처럼 ‘내가 더 좋은 축구를 하기 위해서 어느 나라, 어느 도시든 상관없이 가도 돼!’ 이게 아닐 것 같은? 이제는 축구와 가족이라는 두 상황을 좀 봐야죠. 선배님들이 가족이 행복해야 하는 도시로 이적을 하는 이유를 이제는 대충은 알 거 같아요. 그 정도로 제가 많이 달라진 거 같아요.”

07. ‘빅클럽 플레이어’ 황인범의 자부심

과거 기성용은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서 활약하며 ‘빅리그’를 경험했고, 선덜랜드와 스완지에서 거듭 빼어난 활약을 펼친 2010년대 중반에는 꽤 오랜 기간 그의 ‘빅클럽’ 진출 가능성이 제기됐다. 실제로 유벤투스, 아스널 등이 기성용에게 관심을 나타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었지만, 끝내 그의 ‘빅클럽 이적’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아쉬움을 내비쳤지만, 정작 기성용은 그때마다 국내외 언론을 통해 “나한테는 나를 원하는 팀이 빅클럽, 내가 뛰는 팀이 빅클럽”이라며 후회는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올해로 29세가 되는 황인범에 대해 국내 팬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점은 그가 월드컵, 챔피언스 리그 무대에서 '실적'을 내고도 아직 ‘유럽 5대 리그’에 입성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황인범 또한 당연히 팬들의 이와 같은 아쉬움을 이해하고, 일정 부분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황인범은 지금까지 이적시장에서 수많은 변수를 맞으며 계획이 틀어지면서도 목표 의식에 따른 결정을 내렸고, 그 덕분에 챔피언스 리그가 아닌 ‘빅리그’는 아직 경험하지 못했으나 매번 ‘빅클럽’에서 활약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기성용 또한 유럽 진출 초기 시절 ‘빅리그 팀’은 아니지만, ‘명문 구단’이라는 명성이 확고한 셀틱에서 활약하며 빅클럽의 의미를 새롭게 배웠다. 러시아, 그리스, 세르비아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황인범은 네덜란드에서는 팀과 리그에 모두 만족감을 내비쳤다.

“올림피아코스, 즈베즈다는 사실 리그만 놓고 봤을 때는 인프라를 비롯해서 모든 것들이 조금은 떨어졌어요. 그런데 팀을 놓고 봤을 때는 올림피아코스, 즈베즈다가 워낙 좋은 팀들이고 빅클럽이다 보니까 저는 너무 감사한 환경 속에서 해왔죠. 그런데 그때는 원정 경기를 가면… 특히 세르비아 리그는 정말 열악한 상황 속에서 하고 있는 팀들이 많아요. 예를 들어 한국의 어떤 어린 선수가 K리그에서 활약을 하고 있는데, 세르비아 리그나 그리스 리그의 하위권 팀으로 가는 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본다면 선뜻 강력하게 추천을 해주지는 못할 거 같아요. 얼마나 힘든 환경 속에서 해야 하는지 가늠이 되니까요. (고)영준이도 파르티잔에서 환경이 쉽지 않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런 리그에서도 올림피아코스나 AEK 아테네, 파나티나이코스라고 한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죠. 세르비아는 사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즈베즈다만 좋은 환경이거든요. 그런데 네덜란드 리그는 한국 선수가 가기에는 어느 팀이라도 제가 봤을 때는 괜찮을 것 같아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경기장 시설이 조금 열악하고, 3~4천 관중 앞에서 경기하는 팀들조차도 훈련이나 경기하는 운동장 잔디 같은 환경은 정말 선수로서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여기서는 리그 전체가 선수들이 각자 장점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환경을 가지고 있어서 한국 선수들이 와서 활약을 해줬으면 좋겠고, 또 한국의 좋은 선수들이 와서 각자 장점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로 황인범은 루빈 카잔에서는 동유럽 최고의 명장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레오니드 슬루츠키 감독의 지도를 받았고, 올림피아코스는 맨시티 스타 잭 그릴리시가 휴식기가 되면 구단 시설을 찾아 개인 트레이닝을 할 정도로 최첨단 구단 시설을 자랑하는 대규모 구단이다. 즈베즈다는 황인범이 2023년 여름 이적시장 막판 발생한 예상치 못한 변수로 위기에 직면한 순간 챔피언스 리그 무대에 데뷔할 기회를 제공해준 팀. 그의 현소속팀 페예노르트는 명실공히 네덜란드 명문으로 꼽힌다. 이뿐만 아니라 올림피아코스, 즈베즈다, 페예노르트는 유럽에서도 가장 열정적인 홈팬을 보유한 팀들이다. 마지막으로 ‘황인범에게 빅리그, 빅클럽은?’이라는 막연한 질문을 던져봤다.

“저도 성용이 형이 말씀하신 거에 진짜 100%, 200% 공감하는 거 같아요. 제가 지금까지 뛴 팀들이 실제로 유럽 내에서 빅클럽이었고요. 많은 분들이 어떻게 보면 아쉬움을 가질 수는 있고, 저도 그거에 대해 인지하고 있고요. 그런데 이번에 페예노르트로 왔을 때도 여기가 유럽 5대 리그는 아니지만, 어느 5대 리그의 중하위권 팀들보다 더 좋은 구단이거든요. 제가 5대 리그에 가지는 못했지만, 제가 뛰고 있는 페예노르트나 예전에 있었던 즈베즈다나 올림피아코스, 루빈 카잔은 다 너무 좋은 구단이었고요. 제가 5대 리그에 가는 경험을 아직 하지는 못했지만, 저만의 경험들을 계속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어요.*

“제가 은퇴하면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지금 현재로서는 지도자 생각은 없지만, 행정이든 지도자든 뭔가 하게 됐을 때 제가 선수로 쌓은 경험의 다양성은 대한민국에서 아마 1번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이런 자산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요(웃음). 성용이 형이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제가 뛰어왔던 팀들에 대한 자부심이 있고, 또 그 팀들에서 받았던 사랑을 생각하면 제가 감히 ‘나는 5대 리그에 가지 못한 선수야’라면서 아쉬움을 가지기에는 그동안 너무 과분한 사랑을 받아왔어요. 너무 감사하고, 행복한 경험들을 많이 하고 있는 선수죠. 실제로 제가 지금 빅클럽에 있고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이 팀을 한국에 더 많이 알리고 싶어요.”

글 / 인터뷰 진행 = 한만성, steve.han@fifa.org

자료 = 와이스카웃

사진 = Getty

P.S.: 황인범 인터뷰를 마치며

(미처 기사 내용으로 포함하지 못한 황인범과 나눈 대화 일부를 공개한다)

“제가 이적하면서 새 팀에서 프리시즌을 같이 했었던 게 밴쿠버 때가 유일했어요. 그때마저도 사실 프리시즌 마지막에 합류해서 연습 경기도 제대로 못하고 바로 경기를 했었던 거로 기억해요. 그래서 제가 프리시즌을 쭉 하면서 평가전을 계속 하면서 시즌을 준비한 경험이 없다 보니까 이런 상황에 대해 한번도 불만을 가졌던 적은 없었고요. 오히려 저는 프리시즌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선수거든요. 힘들잖아요(웃음). 그리고 선수로서는 리그를 들어가야 ‘그렇지. 이게 축구선수지’라는 느낌을 받아요.”

—팀을 옮길 때마다 이적시장이 닫히기 직전 새 팀에 합류해 적응이 어렵지는 않냐는 질문에

“오히려 계속 실전을 하면서 적응하는 게 더 좋다는 생각이 항상 있었어요. 왜냐면, 훈련에서 동료들이 나를 인정해주고 받아주는 것과 경기장에서 뭔가 보여줬을 때 이 선수들이 나를 받아들이고 인정해 주는 거에 대한 차이점이 분명히 존재하거든요. 당연히 이적을 늦게 하면 항상 쉽지 않죠. 항상 스트레스가 되고, 저는 이적을 할 때마다 사실 더 좋은 무대로 가고 싶었던 마음이 늘 있었다 보니까 그 속에서 오는 압박감, 조바심도 굉장히 컸고요. 이적이 잘 이뤄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걱정도 많이 했었고요. 솔직히 이적이 늦어지는 게 멘탈적으로는 쉬운 상황은 아니죠.”

—지난 4년간 평균적으로 1년에 한번씩 이적을 하게 되며 멘탈이 흔들릴 수도 있었을 것 같다는 우려에

“진짜 제가 안 그래도 와이프랑도 얘기했고, 부모님이랑도 얘기했고, 저희 형이랑도 얘기한 게… 밴쿠버에 있을 때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가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던 거예요. 그때 당시에는 그거를 몰랐어요. 너무 어렸고, 그냥 마냥 유럽에 나가고 싶었고, 그러다 보니까 조급해졌고…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거기만큼 살기 좋은 데가 없었고 사람들이 나이스한 곳이 없었고. 그래서 너무 그리워요.(웃음)”

—가족과의 삶이 중요해졌으니 시간이 흐른 후 MLS 복귀를 생각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농담 섞인 질문에

“감독은 못할 것 같습니다! 제가 경험해 본 감독님들을 보면… 아, 저는 자신 없습니다(웃음). 그래서 제가 소박하게 키우고 있는 꿈은 대전 하나 시티즌 단장이 되는 건데… 사실 우스갯소리로 제가 가족이나 친구들한테 이런 얘기를 했는데, 이것마저도 쉽지는 않잖아요. 아직은 모르겠어요.”

—현역 은퇴 후 삶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다고 한다

”예전에 벤투 감독님과 코칭스태프 선생님들도 제가 그리스에 있었을 때 직접 오신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때 감독님이 제 경기를 보시지는 못했었어요… 그리스까지 오셨는데 경기 전날밤에 문자를 보내셨어요. 코로나 걸리셨다고…(웃음) 미안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지난 2022년 그리스에서 벤투 감독의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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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단독] 황인범이 다섯 번째 행선지 네덜란드에서 누리고 있는 것들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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